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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고잘쓰고잘말하기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여태껏 내가 쫒았던 길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눈치를 보고 있었구나. 가족이나 국가가 물리적으로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사회가 부여한 통념에 따라 상당 부분 움직이고 있었구나. 그래, 내가 가야 할 길은 이게 아니구나. 눈치 안보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진정한 자유주의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극대화가 지상과제다. 그러한 국가의 교육기관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을 양성하지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다트머스맨을 까는 다트머스맨이 곧 나였다. '한남'이길 부정하는 한국인 남성이 나였다. 자아를 성찰하고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내가 가진 특권을 인정하고 비판하는 일이었다. 특권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수록 나는 자가당착과 자기부정의 늪에 빠졌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그러나 그 답 없는 인문학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다름을 쫒는 학문이 있어야 삶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답 나오는' 사람보다는 '노답'인 사람, 예측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한국사회는 부유해졌지만 청년 세대는 부유하고 있다. 각자 조각배처럼 둥둥 떠서 목적 없이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는 엔포세대가 아니다. 결혼, 집, 출산, 경력 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게 아니다. 나름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표류와 부유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구조해주는 게 맞지만, 후자는 내버려두는 게 좋다. 

 

나의 자유는 결국 나의 일상적 퍼포먼스가 얼마나 해방적이냐에 달렸다. 그리고 그 퍼포먼스의 의미는 나의 의도가 아닌 사회문화적 구조가 정의하낟. 아무지 자유로운 행위도 특권이라면 해방적이지 못하다. 면도와 채식은 그래서 내게 일맥상통한다. 매일 아침, 하루 세끼 벌이는 나만의 퍼포먼스가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코로나를 겪으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원 헬스' 인간과 동물과 생태계의 건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자연, 특히 동물에게 가하는 착취와 폭력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인간을 죽이고, 억압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당연한 진리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다. 잊어서는 안된다. 생태가 파괴되면 인간의 자유도, 평화도 있을 수 없다. 

 

이제 그만 좀 생산하고, 그만 좀 짓고, 그만 좀 소비하고, 그만 좀 부수자. 그냥 맥이 좀 흐르게 내버려두어야 맥락이 생기고, 문화예술이 다채로워진다. 맥을 잇자!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도 철저히 재상적인 문화가 지속가능한 창조의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결국 동물해방운동은 인간에 의한 운동이어야 한다. 억압의 주체이자 동족인 인간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대학살에 연류되어 있는 사실을 매일 자각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인지부조화가 있지 않으면 인간혐오가 도지기 십상이다. 

 

동물해방운동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 비건의 도덕적 숭고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무책임할 용기가 없다. 수많은 동물들의 고통과 기후생태 위기 앞에 눈을 돌릴 자신이 없다. 

 

 

북액션> 자신이 어떤 삶의 형태를 원하는지 자유롭게 토론해보세요.

 

나는 '휘뚜루마뚜루' 꿈꾸고 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의 자유는 부사다. 나에게 자유란 얻고 싶은 어떠한 대상도 아니고, 하고 싶은 특정 행동도 아니다. 그런 목적들은 순간 순간의 욕망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다. 나는 그저 '자유롭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유로이' 살고 싶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하루 내 삶의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휘뚜루마뚜루 자연발생적인 행위를 이어갈 때 나는 내 본연의 모습에 다가감을 느낀다.

 

작년 초, 13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아이들과 제주에서 일년을 살았다. 어떤 뚜렷한 계획이나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내 삶을 속도와 방향을 느리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타인에 의해, 상황에 의해 떠밀려 사는 삶을 잠시 멈추거 내가 온전히 주인공인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내 생각처럼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만끽하는 생활이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 같은 막막한 마음도 있었다.  

MKYU입학하고 책을 읽고 함께 공부하면서 내 꿈의 문장을 하나씩 써내려가고 3년 후 꿈의 이력서도 작성해보았다. 작년부터 모으기 시작한 꿈의 재료들이 하나하나 맞춰지면서 뿌옇다 못해 보이지 않던 내 꿈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선명해졌다. 직업의 유무, 능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의 잠재력을 믿으며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내 꿈을 응원하고 꿈을 이뤄가는 삶의 스토리를 기록하는' , 내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삶이란 결국 '책임'지는 삶이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갖고 '반응'하는 삶이다. 

나의 본캐인 사회복지사로서의 마인드에 디지털 기술을 더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며 음악와 놀이로 세상을 더 즐겁고 살만하게 변화시키는 꿈을 꾼다.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쓸것이며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는 더욱 자유로워 질 것이다.